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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18.09.23 13:37

화해, 평화, 희망(마5:9, 엡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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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우리는 남한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만나는 모습을 보았다. 분단의 장벽이 이미 허물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평화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분단의 장벽은 남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 간에도, 교회와 가족 안에도 있다. 경쟁과 갈등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살아간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다 화가 난 것 같다. 그러다가 마음이 느긋하고 정이 깊은 평화의 사람을 만나면 치유 받는 느낌이 든다. 주님은 우리를 그런 자리로 부르신다. 상처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이다. 팔복은 모두 천국 백성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중에서도 평화를 도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있지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닮은 자의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평화를 만드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다르다. 주님은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다.(14:27)

 

세상이 주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아무래도 힘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세상의 평화는 강한 자들이 독점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그 평화는 결과만 중시하지 그 과정의 평화는 배제한다. <배제와 포용>이라는 책에서 작가는 모든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국가관계도 배제와 포용이라는 역동적인 상황 속에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마음에 드는 사람은 포용하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배제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는 거짓 평화이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하나 되는 평화이다. 자기를 희생하고 내어줌으로 얻어지는 화해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이다. 주님은 세상을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하기 위해 자기 몸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은 세상으로 오셨다. 내가 속한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으면 평화가 불가능하다. 자기가 속한 문화와 자리를 멀리하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구약에서 화목을 위해서는 희생제물이 필요했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사람과의 화목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평화로울텐데아니다. 주님은 평화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화목은 나를 죽일 때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주인과 종, 남자와 여자,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하나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거짓 평화는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한다. 교통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내가 죽지 않았다고 해서 참 다행이구나 하고 자기의 평화가 흔들리지 않으면 그 평화는 거짓 평화이다. 예수님은 이런 거짓 평화를 깨고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추석명절 가족들의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란다. 나아가 교회와 나라의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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