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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난과 고통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어릴 적에 주사를 맞을 때에는 아파서 울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주사를 맞을 때는 울고 싶은 것을 참아야 했습니다. 고통을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것은 저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이 몸이 아플 때 입원시켜 달라고 하고, 수술받겠다고 하면 젊은이들은 세상을 살만큼 사셨는데, 왜 저러시나?” 싶을지 모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고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 떠날 때 고통없이 편하게 떠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오랫동안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런 기도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더불어 고난을 나누기 위하여 자원하여 인간으로서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겪었습니다. 아니, 어느 인간도 겪을 수 없는 고통을 다 겪었습니다. 사생아가 아닌가 의심도 받았고, 사단의 하수인이라는 비난도 받았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도 당했고, 그리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주님이 겪은 고난에서 자신은 면제해 달라는 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떠날 때 꼭 필요하다면 고통을 허락하셔도 좋습니다. 고통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만 보이지 않게 해주세요.”

인간의 고통과 고난은 오랜 세월 철학자들이 씨름했던 주제이고 이 씨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딜레마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신이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출할 수 없다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전지전능한데 인간을 고통 가운데 버려둔다면, 신은 선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동시에 증명해 보여주시고, 이 딜레마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이고, 언제인가 고난과 고통을 인간의 삶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부활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잠정적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고통과 죽음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아직 고난으로 가득 찬 파괴된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나도 예수님처럼 고난을 감수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감수하기로 한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사단을 대상으로 영적 싸움을 싸울 때, 어떤 때에는 고난만이 유일한 승리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입니다. 예수님은 악마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요일 3:8).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있어라!’ 말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없어져라!” 한마디하면 악마의 일을 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승리를 이루셨습니다.....중략....고난을 통한 영적 싸움에 참여하려면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지 말고 사명에 두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면 주님이 우리를 고난에 초청하실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도망칠 수 있습니다. 인생이 목적을 사명에 두고 천국의 상급을 기대하면서 살때에만 고난의 초청에 응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난과 행복이 상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를 위한 고난의 끝에는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난이 좋아서 받아드리신 것은 아닙니다. 장차 있을 기쁨을 위하여 수치를 참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12:2). 그렇다면, 우리가 주를 위해 고난을 선택했다면, 더 큰 행복을 누리기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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