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는 사람이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는 농사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때 비로소 그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을 마치고 밤 10시쯤 집으로 가려고 나서는데 낯선 사람이 교회 로비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교회에 오셨느냐? 하고 물으니 지방에서 왔는데 잘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 잘 곳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하룻밤만 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기는 잠 잘 곳은 없다고 하니까 아무 곳이나 앉아서 시간만 보내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새벽에 사람들이 오기 전에 조용히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하룻밤만 허락할 수 있으니 오늘 밤만 이곳에서 지내라고 하였습니다. 집으로 갔다가 다음날 새벽 교회로 향하면서도 여러 가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그분은 자신의 자리를 잘 정돈하고 조용히 교회를 비운 상태였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 사랑이 때로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는 참 결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사랑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희생이나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그만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결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비용이 금전적 손해일 수도 있고, 시간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는 감정적인 손해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비용을 지불 할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일서에서는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3:18)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말씀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행함으로 사랑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것에 맞는 합당한 반응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감사를 표한다든지 아니면 작은 선물이라도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없진 않지만 늘 좋은 결과만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를 받기도 하고 아무 반응이 없어 오히려 무안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가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이 손해를 보거나 희생하겠다는 결심이기 때문입니다.
목회하면서 합당한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랑받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에 대한 비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손에 흙을 전혀 묻히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하기 위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오셔야 했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말씀으로 우주를 만드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말씀으로도 뭔가 이룰 수 있는 분이시지만 사랑을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셨습니다. 주님을 닮기 소원하는 우리도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면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