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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23.12.24 08:07

어느 날, 우리 곁에 찾아오신 하나님(요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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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어느 날 하나님이 우리 곁에 직접 찾아오신 날이다. 하나님은 원래 계셨던 곳에 그대로 쭉 계시지 않고 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까? 대다수 종교들은 도덕적인 실력을 쌓아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려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 곁에 찾아오셨다고 가르친다. 기독교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크다란 장벽이 있어서 인간 스스로 하나님께로 절대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벽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위에 초월자로 계시면서 우리가 잘사는지 못 사는지 지켜보면서, 잘 살면 상을 주고 못 살면 벌을 주면 될 일이지 왜 굳이 인간이 되셔서 오셔야 하는가? 내일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오늘 성육신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면 좋겠다.

 

본문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다. 여기서 거하시매는 텐트를 친다는 뜻이다. 옛날 유목민들이 텐트를 치는 것은 그곳에 거주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텐트를 친 것은 우리와 함께 살려고 한다는 뜻이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살려고 오셨다. 우리와 함께 살려고 온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것보다 더 확장된 의미다. 단지 일회적인 구원의 목적으로만 오셨다면 30살 성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셔도 될 일이다. 아니면 수퍼맨처럼 하늘에서 내려와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다시 하늘로 사라지듯이 그렇게 구원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온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와 깊이 소통하면서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어 가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잠자리만 달라도 불편해 한다. 편리한 아파트에 살다가 반지하 전세방으로 이사한 분은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무한히 자유로운 하나님이 한계가 많은 인간이 되셔서 사시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불편과 고통이 뒤따르는 일일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만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와 친밀해지고 싶어한다. 친구가 되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수준으로 낮추어 찾아오셨다. 그리고 요15:15에서 이제부터 너희는 내 친구라고 했다. 사람들끼리도 수준의 차이가 있으면 차별하고 차별 당한다. 경제적인 수준이나 문화적 수준이 다르면 소통하기가 어렵고 차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친구가 되면 수준 차이도 별 의미가 없다. 인간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와 친구라고 하시고 우리와 주님 사이에 있는 모든 장벽을 허물어 주셨다. 그러면 주님은 왜 우리와 친밀해지고 싶어하는가? 왜 우리와 소통하고 싶어하시는가?

 

주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영원히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하나님처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을 하나님처럼 높여주셨다. 이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친밀함에 있어서 무한대의 가능성이 만들어졌다. 성탄절을 앞두고 당신은 얼마나 하나님과 소통하는 지 돌아보라. 하나님과 소통이 여전히 막연하고 잘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 성탄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놓치고 살고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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