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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22.08.14 08:12

죽은 자의 부활(고전15: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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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14살 지성이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안타까워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했다.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은 이 땅에서 만나는 가장 슬픈 일이다. 뭐라고 표현해도 자녀를 잃은 부모를 위로할 수 없다. 지성이는 너무 빨리 떠났지만, 사실 우리도 죽음에서 그리 멀지 않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살았던 누구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나사렛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다. 그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에 대한 기록도 많이 남아 있다.

 

성경이 증언하는 부활은 기독교가 만든 발명품이 아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독교가 부활이란 방법을 고안해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건이고 역사였다. 그 역사적 사건이 오늘날 인류를 두 종류로 구분 짓게 했다. 하나는 흙에 속한 인간이고 또 하나는 하늘에 속한 인간이다. 흙에 속한 인간은 자연적인 본성을 지닌 인간이고, 하늘에 속한 인간은 예수 생명의 DNA를 품고 있는 인간이다. 예수의 영원한 생명을 지닌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다. 그래서 본문은 성도의 죽음을 뿌리는 씨라고 하였다. 그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어 어떤 형체를 지니게 될 것인데 그 형체가 곧 하늘에 속한 인간이 입을 몸이라고 한다.

 

그러니 땅에 속한 몸이 있고 하늘에 속한 몸이 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죽으면 언제가 하늘에 속한 몸을 입게 된다. 사후에 영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몸을 입게 된다. 그 몸이 어떤 몸일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까? 일생에 수박을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새까맣고 작은 수박씨 하나를 보고 그렇게 크고 맛있는 수박을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몸은 그만큼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땅에 있는 몸과 전혀 다른 몸이라고 할 수 없다. 사과씨에서 수박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과씨에서는 사과, 수박씨에서는 수박이 나온다.

 

죽은 자가 부활할 때는 연속성이 있고 불연속성이 있다. 각각의 몸을 구별하고 알아볼 수 있는 연속성이 있지만, 그 몸의 성질은 이 땅에서 입었던 것과 전혀 다른 불연속성이 있다. 죄짓는 몸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고전15:42-44)라고 하였다. 이 땅에서 입은 몸은 죄짓는데 어울리지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몸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몸은 따로 있다.(50)

 

이제 우리 성도에게 죽음은 더이상 두려운 것이거나 피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질병이나 아픔이나 불안이나 공포와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사는 곳이다. 영혼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입을 새로운 몸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노후 대비를 잘하고 살아도 사후 대비를 잘하지 못하면 우리 안에 있는 근원적인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 사후 세계만 생각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다. 죽음 너머에 확실한 보장을 받은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죽음만 두려워하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일과 더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58)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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