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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14.07.15 09:56

침묵과 고독의 공간으로 들어가라(1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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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7:1-7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라고 할 수 있는 엘리야가 처음 등장하는 본문이다.

그는 지금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살고 있는 궁전에 나타나 있다.

그곳에서 그는 당시 절대군주였던 아합에게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왕 앞에서 이런 재수없는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움을 걸듯이 왕 앞에서 대놓고 확 질러버렸다.

여기서 아합왕의 반응은 보이지 않지만 뻔하다. 대노했을 것이다.

그래놓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궁전을 떠나서 요단 앞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어 지내라고 하였다.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니 그것을 먹고 마시면서 그곳에서 지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가라고 한 그릿 시냇가는 인적이 없는 계곡과 계곡 사이에 난 협곡에 있었다.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조차도 살지 않는 곳이다.

왜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런 곳에서 숨어 지내라고 했을까?

 하나님은 두 가지 교훈을 배우기를 원하는 것 같다.

첫째, 엘리야가 기다리는 훈련을 배우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엘리야는 불같은 사람이다.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다.

왕 앞에 이미 대놓고 말했기 때문에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전진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음에 단단한 각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냇가에 숨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까마귀를 통해서 공급해 주는 것만 먹으라고 했다.

엘리야 같은 사람에게는 가만히 있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왕궁에까지 들어간 사람인데 다시 숨으라니..

게다가 까마귀가 물어주는 양식을 먹으라니..엘리야 같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기다리라고 했을까?

기다림의 시간은 중심 이동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절대 기다릴 수 없다.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일 수 없다.

기다리는 시간만큼은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맞추어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올 때까지 그 시간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상대가 주인인 시간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도 기다림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자기열심 이나 자기 헌신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이동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침묵과 고독의 공간으로 들어가라.

둘째, 엘리야가 하나님과 독대하는 훈련을 배우기 원하시는 것 같다.

기다리는 시간은 빈둥빈둥 놀고먹는 시간이 아니다.

그 기다리는 시간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생명을 유지할 양식도 없고,

자기를 즐겁게 할 오락도 없고 절대 침묵과 절대 고독의 공간 속에서 오직 주님과 대면하는 일밖에 없다.

끝없는 침묵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끝없는 고독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붙잡아야 한다.

그래야 힘을 비축할 수 있다. 조금 있으면 엘리야는 갈멜산 이라는 곳에서 이방 사제들과 엄청난 영적 전투를 벌여야 한다.

 갈멜산의 승부는 갈멜산이 아니라 그릿 시냇가에서 이미 결정된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침묵과 고독의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 사역의 승패는 이 침묵과 고독의 공간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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