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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22.09.25 08:06

기도에 응답하시는 이유(눅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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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기도의 이미지 가운데 하나는, 끈질기고 악착같이 기도해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다. 기도 응답이 마치 기도하는 자에게 달린 것처럼, 끈질기게 떼를 쓰듯이 하나님의 팔을 비틀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이 들어 주신다고 믿는다. 본문 말씀을 오해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된 말씀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한 친구가 밤중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고 떡 세 덩이를 꾸어달라고 한다. 밤이 깊어서 가족들이 다 자는 시간이었지만 집 주인은 친구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7) 한 밤중에 자고 있는 친구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는 것은 무례하고 적절치 않은 행동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해서 거절할 수 없었는가? 친구라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열심히 간청했기 때문인가? 8절에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했다. 마치 끈질기게 구하였기 때문에 빌려 준 것으로 말한다. 이것은 간청이라는 단어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간청의 원어 뜻은 염치없이 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친구가 됨으로 인하여서 준 것이라기 보다는 염치없이 뻔뻔하게 구하는 것 때문에 준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 친구는 염치없이 그렇게 구할 수 있는가?

 

고대 사회는 어떤 집에 손님이 오면 그 손님은 그 마을의 손님이 된다. 그래서 누구라도 그 마을의 손님을 환대하는 것이 종교적 의무다. 그 손님에게 누구라도 떡을 대접하지 않으면 마을 전체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게 된다. 그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친구의 집을 두드려서 떡을 달라고 뻔뻔하게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요청에 응하지 못하면 동네에서 부끄러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집 주인은 무례하게 보이는 친구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비유의 주안점은 밤중에 찾아간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귀찮고 무례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요청에 거절할 수 없이 들어주어야 했던 집주인이 핵심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집주인과 같은 분이신가? 우리가 무례하게 구해도 하나님 당신 이름과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답해 줄 수밖에 없는 그런 분이신가? 비유는 이 집 주인과 하나님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 성향이라고 대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면하려고 싫어도 억지로 들어주시는 분은 아니다.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여기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팔을 비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녀의 행복을 자녀보다 더 원한다. 집주인은 어쩔 수 없이 응답하지만 하나님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응답해 주신다. 그래서 더 열심히 끈기있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이다. 성령이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다스림이다. 비록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일로 인해서 주님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하나님은 자녀가 가장 잘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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