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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16.07.19 09:22

나아감과 물러섬(마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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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인생이란 무대에 나아왔다가 때가 되면 물러나는 법이다. 우리는 얼떨결에 무대에 올라왔지만 물러날 때는 좀 더 극적이고 화려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참 어이없이 갑자기 무대에서 퇴장해버렸다. 큰 사람답게 멋진 죽음을 생각했는데, 이건 숫제 개죽음을 당한 것 같이 보인다.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는 칭송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던 사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식민지 백성으로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제대로 된 영적 지도자가 없었는데 4백년 만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웠던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30세쯤 되어 갑자기 인생의 무대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물러남 그 자체도 그렇지만 그 동기가 어처구니없고 그 방법도 아주 비참하다.

 

세례요한은 헤롯왕이 자기 아내를 버리고 자기 동생의 아내와 다시 결혼한 것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요한을 참 예언자로 생각하던 대중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헤롯은 세례요한을 어쩌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죽이도록 미워하였다. 그러다가 헤롯의 생일날에 딸(원래는 조카)이 보여준 춤사위에 녹아서 헤롯은 딸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딸은 자기 엄마를 찾아가서 상의하였고 결국 엄마가 시키는 대로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지만 아주 갑작스럽게 인생 무대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성경에는 위대한 신앙인이고 영웅이지만 극적으로 무대에서 물러난 사람들이 있다. 구약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40년을 흘러 보낸 뒤에 가나안이 바라다 보이는 모압 평지에 도착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가나안땅이다. 그런데도 그는 느보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도 보면서 죽었다. 40년을 수고했는데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죽어 묻히는 것이 마땅한 것 같다. 더구나 그는 기진맥진한 것이 아니라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 힘이 남아 있는데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단지 바라다보면서 죽었다.

 

신약의 영적 거장인 바울도 마찬가지다. 신약성경 13권을 기록한 대단한 인물이다. 이방세계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크게 쓰임을 받았다. 그런 그가 말년에 죄수로 로마에 압송되어 그곳에서 쓸쓸하게 퇴장하였다. 은퇴식이나 고별사도 없이 물러났다.

 

모세나 바울이나 세례요한은 격에 맞지 않은 아쉬운 퇴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나아감이나 물러남이 시원하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미련 없이 떠나 버린 것이다. 마지막 모양새가 어떤지, 어떻게 죽는지 얼마나 화려한 퇴장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하나님에게 서운했을까? 잠깐 서운했을 것이다. 그러나 금방 괜찮았을 것이다.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교회생활에서, 인생에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 기꺼이 쓰임 받다가 주님이 부르실 때는 기꺼이 물러나는 사람들이 되어야하겠다. “그만 물러나라, 손 놓아라”, 해도 하나님만 믿고 하나도 서운하지 않게 물러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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