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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하였다. 주님의 사랑 고백에 대해서 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대꾸하였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섞인 하소연에 가깝다. 현재 우리 처지와 형편을 보면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씀을 할 수 있는가? 그런 말씀 마시라는 뜻이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페르시아의 식민지로 살면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근과 흉년이 이어져서 먹을 양식이 없어 배를 굶주리고 있다. 백성들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는 말이 터져 나오고 있다. 냉소주의적 태도가 문제다. 예배 의식을 행하기는 하지만 패배적이고 냉소적인 태도였고 성의없이 형식으로 하는 의식에 불과했다. 백성들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 있다. 지금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신앙이 밥 먹여 주나’하는 태도이고 ‘하나님 믿는다고 무슨 덕을 본 게 있느냐’ 하는 식의 태도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신다. 문제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하나님은 사랑하지만, 백성들은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풀지 못하면 신앙 인생의 갖가지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는 질문에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는지 말씀하신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라고 하였다. 야곱을 사랑하시는 방식으로 사랑하신다고 하신 것이다.

 

이 사랑은 첫째, 하나님의 ‘한 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야곱을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도 죄를 범하여 포로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셨고 집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둘째, 하나님은 ‘내’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방식대로 사랑하신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더하기’ 방식의 사랑이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빼기’ 방식의 사랑을 하신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야곱을 선택하여 사랑하셨고 하나님 방식으로 사랑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선택하셔서 사랑하고 계시고 하나님 방식으로 사랑하고 계신다.

 

그러면 어떻게 그 사랑을 알 수 있을까? 롬5:5에서는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하였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된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머리가 아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이 느끼는 방식으로 알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가진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을 마음에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논리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셔서 그 사랑을 느끼게 해주시니까 우리 소망이 진짜라는 것을 안다.

성령이 역사하여 경험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 롬5:7-8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역사적인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보여주고 있다. 성령께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머리로 알게 하시고 그다음 마음으로 경험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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