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님은 성공하셨어요.
우리교회에도 말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섬기며 기도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권사님들 가운데 자신의 인생이 부끄럽다며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는 분도 계시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병마도 있고, 자녀들도 여전히 교회에 다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아마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여 부끄러워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공이란 것이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에게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주님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과정의 충실함을 더 원하시는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마더테레사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보자.
마더테레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때, 한 기자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대기업은 수만명의 사람들을 먹고 살립니다.
그런데 당신은 고작 몇 십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먹여 살렸을 뿐입니다.
이런 큰 상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마더테레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신실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사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실패한 것인데, 그는 성공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전쟁에 나가서 패배하는 것이라면, 패배하는 것이 성공이다. 하나님께서 안 주시면 안 가지는 것이 성공이다.
어릴 때 들은 동화가 있다. 마을 원님이 썩은 씨를 나눠준 뒤 키우라고 명령했다.
합격한 사람은 딱 한 사람, 썩은 씨를 그대로 가져온 사람이다.
이게 성공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준 반지, 그것 외에 무수한 반지를 손에 낀 여인이 있다면, 그는 부정한 간부(姦婦)다.
고난의 시간에는 고생하는 것이 성공이다.
고난의 핏 잔을 마신 예수님을 과연 누가 실패자라고 말하는가?
안중근 의사의 노모가 감옥의 아들에게 전한 말이 있다.
‘너는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너는 항소하지 마라.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르렀으니 딴 맘먹지 말고 죽어라.’
아들이 살아남는 것이 성공이 아니었다.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가는 것이 반드시 성공이 아닐 수 있다.
신실한 권사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권사님, 권사님은 성공하셨어요! 부끄러워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