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성경공부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고후4:7-18)

by 이정률 posted Apr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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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의 배경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심각한 갈등이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뒤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잘못 가르쳤다. 거짓 교사들의 기준으로 보면 바울은 진짜 사도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허구한 날 돌에 맞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고생하는,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이다. 진짜 사도라면 하나님이 그렇게 살도록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에게 진짜 사도의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까지 가짜 취급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바울은 자기의 정체성을 질그릇이라고 한다. 그리고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그리스도는 보배다. 그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한다. 보배를 가졌다고 해서 질그릇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자기는 질그릇이다. 사람들은 ‘네가 진짜 보배를 가졌다면 네가 고려청자쯤 되어야지 어떻게 질그릇이야’라고 한다. 내가 괜찮고 대단해지고 강해져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질그릇 안에 보배를 두시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그 이유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질그릇에 금칠해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보배 때문에 영광을 받으신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직분을 구분해서 말한다. 자신이 질그릇이라고 해서 복음의 일꾼이라는 직분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질그릇이기 때문에 복음의 영광과 능력이 무가치해지거나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잘나서 내가 전한 복음도 진짜야’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희들이 말하는 대로 나는 질그릇 맞아 그런데 그래서 이 복음이 진짜 복음이야.’ 고려청자 안에 보배를 두면 사람들은 고려청자만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질그릇 안에 보배를 두면 보배가 드러난다.

 

바울은 자기의 대단함을 입증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자신의 대단함을 증명하여 하나님을 증명하지 않았다. 그건 마귀가 하는 유혹이다. 오히려 자기의 연약함을 드러냄으로 자기 안에 있는 보배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고 지금 바울이 하고 있는 일이다. 바울은 10절에서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산다고 한다. 한번 죽는 것이 아니라 ‘항상’이다.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고난당하지 않고 편하게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있다. 그것은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이고 부수는 것이다. 그럴 때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가 더 잘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질그릇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한다. 답답한 일을 당한다. 박해도 받는다. 거꾸러뜨림을 당하기도 한다. 그것이 질그릇 인생의 운명이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낙심하거나 패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의 생명이 더 잘 드러나고 나타난다. 그러니까 영광스러운 몸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육체에 더 잘 드러나게 된다. 신앙생활은 자기를 증명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공하고 잘되어야만 하나님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더 분명하게 증명된다. 이래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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