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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21.11.28 07:21

주님을 기다립니다(행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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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 오셨다가 떠나셨기에 대림절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절) 초대교회 성도들이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속히 오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계22:20) 그런데 그후 2천 년이 지나갔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속히 다시 오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은 거짓일까요? 지금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요?

 

본문은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 승천은 ‘공간의 이동’이라기보다는 ‘차원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차원의 문제입니다. 차원이 다르면 아주 가깝게 붙어 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항의 물고기와 어항에 코를 박고 쳐다보는 꼬마의 물리적 거리는 아주 가깝지만, 각자의 차원은 전혀 다릅니다. 물고기 차원에서 어항은 우주입니다. 그러나 꼬마 차원에서 어항은 작은 유리통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차원 이동이라고 하면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요? 우리 가까이에 계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멀리 간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차원으로 가셨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승천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승천 이후에는 다시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비록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으셨지만 지금도 우리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같은 방안에서 커튼만 걷으면 곧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옆에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노년에 제자들이 자기 곁을 떠나서 외로웠지만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던 것은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이 결심하고 문만 열면 곧 나타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지금 문 앞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속히 오신다는 말씀이 거짓이 아닙니다. 2천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문 앞에 도착한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주님이 오시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려고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우연히 만나는 것과 기다리면서 만나는 것은 다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매 순간 주님에게로 향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고 어둡고 비관적이라고 해도 주님이 문을 열기만 하면 이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믿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대림절 신앙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몰골이 상한 둘째 아들을 멀리서 알아보고 뛰어왔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님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더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대림절에 이런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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