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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17.05.24 09:23

구원이란 자리 이동이다(요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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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있던 사람이 하나님 가까운 자리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옛날 신하들은 죄를 지으면 귀향이라는 벌을 받았다. 귀향은 왕의 얼굴에서 멀리 떠나보내는 형벌이다. 왕이 중심인데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이 형벌인 셈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구원 받았다고 한다면 반대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한마디로 멸망이고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인가? 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는 자리인가?

 

하나님은 죄지어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가까운 자리로 불러주셨다. 그러면 어느 정도 가까운 자리로 불러 주셨을까? 이것을 묵상해 보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바로 전날 하나님께 기도했던 내용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라고 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 하신다. ‘나 있는 곳은 원래 예수님이 계시던 자리다. 그러면 예수님이 계시던 그 자리가 어딘 지 알아야 우리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단순히 천국이라고 하면 막연하다. 예수님이 원래 계시던 자리가 어딜까?

 

요한복음 142, 3절에 보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가실 것이라고 하였다. 성경은 아버지가 계신 곳을 아버지 보좌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312절에 보면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고 했다. 단지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한다고 하였다. 사실 피조물이 하나님 얼굴을 보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모세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오직 한분이신 예수님만 하나님과 얼굴을 대하실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는 곳으로 인도해 주신다고 하신다.

 

얼굴을 맞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요한복음 118절에 보면, 예수님이 계시던 곳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품속에 계신 분이다. 결국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얼굴을 맞대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품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부부 사이뿐이다. 주님은 우리를 품속에 안아주시기 원하신다. 오늘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주님의 품속이다. 이 땅에서는 그림자처럼 희미한 것이지만 성령 충만할 때 우리는 주님의 품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늘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확인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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