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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18.04.10 08:53

현재의 부활(갈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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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미래 우리가 맞이하게 될 소망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의 부활은 현재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과거의 부활이나 미래의 부활은 믿음의 문제이지만 현재의 부활은 경험의 문제이다. 부활을 믿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지금 부활을 경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과거의 지식이나 미래의 교리로 여기고 지금 현실로 경험하지 못한다. 그런데 본문은 현재의 부활을 경험하고 있는 바울의 고백을 들려준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한다. 현재의 부활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힘으로 옛 자아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바울은 그 자아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개인 자격이 아니라 인간 대표 자격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간 대표로 죽고 부활했기에 그 속에는 자신도 들어 있었다.

 

지금 옛 자아가 살아 있는 것으로 경험되지만 실제로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라고 한다. 줄기에서 꺾여진 나뭇가지는 잠시 푸르게 보이지만 사실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죽은 것은 죽은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 가령, 부부가 결혼한 뒤에 성격 차이 때문에 자주 다툰다. 두 사람의 새로운 현실은 한 몸이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인 것을 경험한다. 이때 우린 어쩔 수 없이 둘일 수밖에 없어.”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둘이라고 경험될 때도 우리는 하나이고 하나일 수밖에 없어라고 하면서 결혼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영적 세계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을 우리가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그렇게 믿을 때 우리가 바라는 것이 현실이 된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

 

그다음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도 실제 현실에서는 잘 경험되지 못한다. 여전히 내가 사는 것 같다. 옛 자아가 서서히 죽어가듯 새로운 자아도 서서히 살아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고 하는 것은 죽음의 질병에서 치료받고 이제 회복의 과정에 놓였다는 뜻이다. 병을 가만히 버려두면 이 병이 나를 죽음까지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적절히 치료하고 약을 먹으면 회복될 수 있다. 병이 회복되면 이제 이전에 병을 가지고 온 습관이나 음식을 자제하고 의사의 처방대로 새로운 습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 새롭게 회복된 새로운 나를 계속 살려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살리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늘 의식하고 인정하면서 교제하고 살아야 한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시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무시하는 경우는 많다. 주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없는 것처럼 혼자 살고 혼자 행동하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주님은 과거에 무덤에서 살아나셨다. 그리고 미래 어느 날, 우리 죽을 몸을 다시 살려주실 것이다.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여기서 현재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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